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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관련

참혹하고 아름다운 파멸, <마귀> 200화까지 리뷰

by 나귀턱뼈 2021. 1. 30.

 

#마귀

#로맨스판타지

#로판

 

 

 

탑에 갇힌 공녀에게 혼담이 들어온다.

그녀의 남편 될 사람은 전처를 몇이나 죽였다는 잔악한 노인.

단단히 겁에 질린 공녀는 결국, 지하실의 석관을 깨어 마귀를 불러내는데….

 

“마귀여, 나는 그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


간략한 소개글. 창작적인 국면에서 소신이 있으신 건지, 글줄 자체가 주는 첫 인상은 담백합니다. 이 글이 시장성을 노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편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적인 이유로 메이저 키워드를 기워붙인 억지스러움이 드러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좋았습니다. 소개글로 끌어올 수 있는 독자층이 한정적이겠지만, 글 자체가 마이너 요소/트리거 요소가 많아서 어차피 메이저 독자들은 못 견딜 테니, 안 맞는 옷을 꾸역꾸역 입히는 것보다는 충성 독자층 눈에 잘 띄도록 조형하는 선택이 맞았다 싶긴 합니다.

 

‘중세/시리어스/미스테리/피폐’ 성향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가뭄 속 단비같은 글입니다. 사용 단어와 전체적인 글의 어조로 인해 독자들도 이 글의 아이덴티티를 유추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소재 자체는 굉장히 클래식한 편. 그러나 로판, 넓게 보면 장르판 안에서 곧잘 소비되지 않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로판적 클래식’이라는 낱말보다는 ‘고전’ 클리셰라는 서술이 알맞을 듯합니다. 중세 문학/고대 서사에 맛을 들인 독자들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클래시컬한 구도가 자주 연출됩니다. 중세의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사회 요건을 고증한 단어 선택, 외려 대표적 유입 키워드 (폭군, 집착, 회빙환 등등) 를 일체 제거함으로써 기존의 기호성으로만 소비되는 웹소 매체에 피로감을 느낀 독자들이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는 작은 효과는 있는 듯합니다.

 

소개글부터 화끈한 편이네요. 보통 로판에서 정략 '약혼 위기'까지는 가더라도, 실제로 노인과 결혼시키지는 않지요. 그런 가정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 의미로 향기가 강한 작품.

 

 

유기체처럼 조화롭게
다른 피폐물에 비비지 말 것

주인공, 지오비네타 이졸데 유리카테스 발데마르

 

캐릭터 속성이 의미가 없음. 웹소 시장과 꽤 다른 포맷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어떤 기호적인, 플랫한 속성으로 둘러두기 어려움. 굳이 부여하자면 ‘신경질적/병적인/팜므파탈’ 속성. 폭풍의 언덕에서 등장하는 ‘캐서린 언쇼’ 캐릭터와 유사하다.

 

특성을 꼽자면 ‘호감형 여주인공’일 가능성이 낮음. 작중 여주인공이 하는 선택에 대해, 그녀의 정서적 결여와 병증이 지닌 가혹함에 대해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주요 평가는 '답답하다'는 것. 본인 생각에는 작품 자체가 답답함을 의도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플러스 요소라고 느낌. 이 작품이 가진 세계관에서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택과 모습이기도 하고. 선택의 연속으로 인해 여주인공이 종래 치르는 대가, 그리고 상황의 압력과 사회 분위기로 인해 겪어야 했던 잔혹한 피해 사실에 대해 열거될 때마다 양가감정을 지니도록 설계되어있음.

 

또한 이러한 환경과 정서 상태의 복잡다난한 연계로 인해, 사람마다 보이는 태도가 일관되지 못하거나 특정 대상에게 극도로 순종적이나 반대로 특정 대상에게만 후벼 파는 잔인함이 양립함. 글을 읽으며 화자인 여주인공에게 공감하기보다는 제3자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야말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며 공감을 하는 순간 극도의 심리적 소모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웹소설 여주인공 캐릭터 했을 때 보편적인 불문율이 있는데, ‘도덕적인 결함/내면의 하자/미모 실추’ 세 가지 요소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 남판소에서 쉽게 주인공에게 루저 정서가 반영되는 것과는 달리 여성 판타지에서는 최대한 여주인공 캐릭터가 무결하기를 바라는 경향이 존재.

 

지오비네타는 이 중 정서적인 두 가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면서 접근하고 있음.

 

또한 초반부의 서술자인 지오비네타는 어딘가 망상적/왜곡적인 기질을 보이는데, 처음에 ‘요한이 죽였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도 의식 속에 묻어두고, 첫 화에서 감금된 동안 요한을 ‘전혀 만나지 못했던 것처럼’ 서술함. 전혀 그 사이의 기억이 없음. 이런 지오비네타의 신경증적인 기질은 일반적인 웹소설 프레임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함. (물론 요한도 만만치 않게 망상/왜곡적인 기질 보임.)

 

 

 

히어로, 요하네스 발데마르

 

이쪽은 그나마 웹소 남주의 속성이 반영된 편. 굳이 키워드를 꼽자면 ‘다정한, 헌신적, 기사, 인외, 집착적 순애보’ 정도라고 본인은 생각함. (참고로 집착적 순애보의 폭력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증된 편이고, 이조차 양날의 검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많기에' 중간이 없음)

요하네스 역시 웹소설 포맷과는 형태가 다른 (그러나 남주 포맷에는 들어맞음) 복잡다난한 캐릭터다. 인외 / 환생이라는 그래도 도식화된 코드가 이 캐릭터의 메인 서사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코드’를 그대로 재사용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이 캐릭터의 메인 키워드, 혹은 정체성은 <이중성>이라고 해석 중. 누이의 오라비로서 상냥한 요한,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는 어린 요한, 어머니에게 학대당하는 피해자 위치의 요한, 심정적인 공포와 번뇌를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시대적 이단자이자 소외자로서의 요한, 가진 것 없는 방랑자 이드리스로서의 요한, 연인에게 배신당한 남자로서, 혹은 연인을 파괴하고자 하는 가해자로서 성립하는 요한. 남주가 나쁘다/남주가 불쌍하다/남주가 멋있다/남주처럼 헌신적인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평가가 동시에 성립될 수 있는 인물이다.

 

유일하게 주인공에게 다정하고 헌신적인 인물이며, 그 순정적 흐름에서 비껴져 나온 분노와 불신을 가장 강도높게 쏟아붓는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휘몰아치며 깊은 농도의 집착과 신경증적인 광기로 승화된다.

 

요하네스는 유일하게 이 장르에서 판타지저인 사랑을 펼치는 캐릭터다. 즉 남주 포맷에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로맨스' 소설의 목적에 부합하는 남주 포맷을 적나라하게 정의하자면 딱 한 가지만이 남는다. ‘그의 세상은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걸맞게 요하네스는, 오로지 본인의 정서적 안위를 위해 (신체적인 안위가 위험해진다고 하더라도) 행위한다. 그는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는데 이게 왜 로설 포맷에 맞을까?

 

왜냐하면 요하네스는 말 그대로 '지오비네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정서적으로 파멸하는) 캐릭터니까. 요한의 절박함과 사랑은 그 자신의 정신적 생존을 향한 발버둥, 독백으로 드러난다. 요한이 자신을 위할 수록, 살아남으려 할 수록 지오비네타는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고, 그럼으로서 <로맨스>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 역시 생에 대한 강한 집착과 사념으로 움직인다. 즉 자기 자신과 여주인공을 떼어놓을 수 없고, 더 내밀하게는 분리할 수도 없이 그녀만을 위하고 사랑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겪어온 세월이 그럴 수밖에 없는 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네트를 향한 요하네스의 집착과 광기 어린 헌신은 남주 포맷과 적절히 아귀가 맞는다.

 

조형의 특수성이라 함은 그런 요하네스의 감정과 행동이 실질적으로 이네트에게 ‘위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성립하는 <로맨스의 환상>을 위해, 많은 로맨스 장르소설에서 남주인공의 집착은 어디까지나 여주인공의 통제하에 있거나 컨트롤이 가능하다. (하여 위협적이지도, 실제 사회 입지나 여주인공의 정서에 위해를 끼치지도 않는 방향이라고 눈속임한다.)

 

폭력으로 망가뜨려서라도 갖겠다는 그의 진의와 실제로 그럴 수 있는 그의 위치, 그리고 그로 인해 이네트가 살아내야 했던 세월이 적나라하게 화자의 입으로 까발려진다. 또한 그 추악함이 어떤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또렷이 전달된다. 도덕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인물의 입체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소설 자체가 '옳다/그르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모든 인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채 서로에게 악의와 욕망으로, 분노와 애정으로, 또는 첨예한 생존 본능을 토대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주고받는다.

 

이 점은 독자로 하여금 주연 인물 둘에게 양가감정을 가지게 한다. 시선은 이입이 불가능한 인물 둘의 자극적인 행동선과 기구한 운명을 따른다. 피폐함은 누군가를 욕받이로 쓸 수도, 누군가가 옳고 그르다고 재단할 수도 없는 불확실성과, 해결할 수 없이 수렁으로 빠져드는 상황으로서 증폭된다.


1–5화 사이 독자이탈을 어떻게 막았는가

웹소에서 독자 이탈을 막는 방법으로 흔히 제시되는 ‘1화부터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현재 시점이 만나는 것/예상치 못한 행운이나 보상이 돌아오리라는 기대감을 주는 것/어렵지 않게 쓰는 것/과거는 짧게 설명하고 사건 진행부터 하는 것’ 전부 위배. 즉 독자 이탈을 막겠다는 의지가 없음. 지분이 크지 않은 특수층을 노린, 혹은 자기만족용으로 기술한 글이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러나 수려한 문장력을 가졌고, 개성이 뚜렷하며, 극적인 재미 요소나 ‘남주인공과의 러브라인 요소’ 가 상당히 도드라져 있기에 시장 진입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임. (카테고리는 '피폐물')

 

특성

글 자체의 밀도가 높다. 폭발할 것 같은 위태로운 감정묘사. (해당 감정에 대한 고증과 해석이 극도로 섬세하게 이루어진) 신경증과 착란, 망상에 대한 묘사, 그리고 잦은 과거와 현재 시제의 변경에도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플롯. (연재형임에도, 세세한 플롯과 연출, 떡밥의 출몰 시기를 기획 단계부터 전부 기입한 게 아니고서야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음) 재해석을 위해 서술된 듯한 미쟝센과 떡밥들이 작품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전형적인 미스테리 플롯이라고 하기엔, 미스테리 그 자체보다는 당장의 극적 상황과 감정에 집중하게끔 유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의문과 찝찝함을 남긴다는 점에서 괴담/순문학 플롯에 가까울 듯.

 

작품이 가진 마이너 요소 (특이점)는 역시 어둠의 농도가 1순위로 뽑힌다. 그리고 이 소설이 독자를 교란시키는 (즉, 편히 볼 수 있고 생각과 감정의 소모 없이 볼 수 있는 웹소설이라는 매체의 강점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점에 있다. 이와 동시에 보편적으로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해 고증을 피하는, 잔혹하고 억압적이며 계급주의적인 시대 배경을 낭만화함과 동시에 처절하게 드러낸다는 것. 그 시대를 지배하는 통념과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현재 사회와 많이 다른 철학에서 비롯된 악습 따위를 에피소드에 잘 응용했다는 것. 시점의 잦은 교체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있는 서술 형식으로 인해 뇌 비우고 읽기엔 독해가 꽤 난해하다는 점도 한몫한다. 주인공을 향한 가차 없는 비극과 고난이 휘몰아치고, 그것을 해소시켜주기보다는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이끌어나가는 파멸의 플롯.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그 외 조연들이 전부 인간적인 호감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어쩌면 범속한 현대 정서를 무시하고 행동하기에 판타지 혹은 이입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외려 ‘관조적’으로 바라보게끔 작품이 어느 정도 의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깊은 고통의 경험/외상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라면, 공감할 수도 있겠다.

 

단지 외계인을 보는 듯한 관조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보지 않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 처하면 누구든 그렇게 변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전제를 가진 채 연민의 시선으로 관망하기를 의도한다고 느꼈음. 배경에서부터 여주인공-남주인공이 서로를 제외하면 그 누구와도 깊이 교류하지 않고, 특히 여주인공은 잔혹한 사회의 그늘에 짓눌려 소외된 상황이기 때문에.

 

시장성, 대중성, 그런 면모로 해석한다면 기이하겠지만, 이 작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괴하고 무자비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소수층에게만큼은, 극찬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음.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를 선정한 기준도, 작가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음울하고도 정념이 휘몰아치는 삽화를 강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글의 특수성을 최대한으로 증폭하여 그것으로 휘어잡고 가는 케이스가 아닌가. 물론 이 작품은 웹소 독자들 절대다수의 선택을 받기 쉬운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작품 자체는 대단하지만, 웹소가 널리 보급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인 ‘말초적인 카타르시스 해소/휴식’이라는 본질적 목적에 걸맞지 않기 때문임. 작가 본인의 역량이 없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미세한 소수시장 (중세, 문학, 고전, 인문학) 요소를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강한 로맨스까지 짬뽕해서 (유일한 상업적 요소), 구세대의 감성을 현대적인 웹소설의 연재처에서 풀어낸 게 마귀라고 해석했음. 이 작품이 많은 사람의 별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독창성과 틈새시장 공략에 대한 강한 목적성, 작가 개인의 필력과 역량 덕분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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